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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4) - 소콜니코프

개성공단 2021. 6. 4. 18:25

그리고리 소콜니코프

 

그리고리 소콜니코프는 뛰어난 혁명가로

소르본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05년부터 RSDRP의 일원이였습니다

소콜니코프는 부하린과 친분이 두터웠고

1906년부터 모스크바에서 사회민주주의 학생 단체를 조직했지만

혁명 활동을 위해 국외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해외에서 당의 활동적인 일원이 되었고

레닌과 친해졌지만

그들의 분열적인 입장에 반대했고, RSDPR의 통합을 주장했습니다

 

소콜니코프는 레닌과 함께 러시아로 돌아오자

매우 빠르게 모스크바 볼셰비키의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내전 동안, 그는 은행들의 국유화를 이끌었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18년부터 내전의 전선에 서 있었거, 제8군의 사령관이였지만

군사교욱과 군 지휘 경험이 없었기에

효율적으로 군을 움직이지는 못했습니다

 

내전에서 패한 후, 그는 소콜니코프는 해외로 도피하여 당에서 계속 일했고

그는 NEP에 대한 부하린의 이념을 지지했지만

그의 신당 창당을 받아들이지 않고, 볼셰비키와 레닌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소콜니코프는 '실질적인 사회주의 구현'이라는 사상의 추종자가 되었고

집단화와 강제 산업화에 대한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입장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에서는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사상이 유력했습니다

 

볼셰비키가 러시아에서 집권한 후

소콜니코프는 사회주의로의 점진적인 이행과

부하린의 경제 정책 도입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하리스트, 맨셰비키, 수정주의자로 낙인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우파 볼셰비키의 도움으로 인민위원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해

정부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OTL - 그리고리 소콜니코프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소련의 정치인

1905년에 러시아에서 사회민주주의자로 활동했고

시베리아로 유배될 위기에 처하자, 프랑스로 망명

그곳에서 레닌을 만나 볼셰비키가 됨

소콜니코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강하게 반대했으나

레닌을 비롯한 인물들의 강화 요구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었고

결국 서명하게 된 인물 중 하나로 남음

 

소비에트 연방 창설 이후

부하린의 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나

레닌과 원수지간이 되는 결과를 마련함

스탈린이 집권하자, 그와 맞서는 행위를 벌이다가

대숙청 때, 굴라그에 수감되었다가, NKVD에 의해 암살당함

이후 호루시초프 정권에 의해 복권

소콜니코프는 비현실적인 경제계획과 급진적인 개혁을 가지고 있는

볼셰비키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오로지 실질적이고, 점진적이며, 신중한 사회주의의 구현을 지지함

그는 러시아의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부하린의 NEP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함

 

OTL - NEP(신경제정책)

적백내전 말기에 레닌에 의해 시행된 경제 정책

사회주의의 정책이 농민들의 불만이 크게 야기되었기에

시장경제를 일부분 도입하는 것으로

농민 개인의 물건 사고팔기, 외국 자본 허용 등을 도입한 것이였음

이 경제정책의 실시로 소련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음

 

다만,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자

이 정책을 모두 뒤엎어버리고

농업집산화와 대규모 산업화를 시작하게 됨

소콜니코프가 지도자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당 내에서는 그를 반대하는 인사들이 있다

이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의 경제 정책에는 제동이 걸릴 것이다

혁명 직후 구성된 러시아 특별위원회(체카)는

반혁명 세력과 싸우기 위한 특별 기관이였다

우리가 서서히 안정되었기에,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만일 누군가가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우리를 위협하려 할 수 있기에

체카를 국가 내의 테러에 맞서게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볼셰비키 집권 이후

반혁명 활동이 매우 활발했기에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카였지만

지금은 많이 잠잠해진 기세였기에

체카의 예산을 대폭 삼각했으며

쿠데타의 위험성이 있기에

활동을 제한하기로 했다

소콜니코프가 부하린의 경제 정책을 지지한다하지만

부하린 사람 자체는 믿을 수 없다

그는 이미 케렌스키 정권과 협력한 전례도 있다

부하린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모르니까 부하린 세력은 모조리 밴 때리고

이새끼에게 체포령을 내림

소콜니코프는 러시아가 세계 무역시장에 진출하게 하여

경제적과 재정적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외국과의 수출입이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자본주의 나라들에게

무역을 제의했다

이것은 사회주의 휘하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자금을 얻을 수 잇을 것이다

브리튼 연방은 승인했지만 오스트리아는 거절했다

또한 미국을 제외한 흑랑스, 독일, 일본, 코뮌, 몽골칸국 모두 거절한다

 

ㅅㅂ

우리는 국제적인 고립에서 헤쳐나오기 위해

세계 무역 시장에 빠르게 적응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여전히 농경국가이기 때문에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을 배려해야 한다

가난한 농민들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고

그저 중산층만에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이다

소콜니코프가 새롭게 만든 법으로

가장 가난한 계층은 세금에서 면제될 것이고

부농들만이 과세 대상이라고 한다

그들은 소득에 비례하는 누진율로 세금을 더 낼 것이며

이 법의 시행으로서, 우리는 마을에서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의 평등화를 지향하는 것만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위해

농업현장에 현대식 기계화 장비를 지원하여

농민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더 많은 식량을 재배하도록 하자

산업화도 어느 정도 하긴 해야하지만

많은 인력과 돈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산업화를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점진적이며 신중한 산업화가 적용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지역이 평등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산업을 분산시키고

전국에 공장을 배치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이것은 사람들이 우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항상 공정해야 하며, 사회는 평등해야 한다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와는 반대로

사회주의는 인민들에게 인간성을 심어줄 것이다

경제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 경제는 인민들에게 인기가 있다

농부들은 밭에서 일하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행복하다 한다

근로자들은 직장에서 소외되지 않고

도시들이 천천히 산업화되는 것을 보고, 흐뭇해 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뤄냈다

 

 

이거는 국가자본주의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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