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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역사

프랑스 혁명 전쟁

개성공단 2021. 8. 26. 11:32

1. 필니츠 선언

요즘 들어 

계속 프랑스 혁명 관련 이야기만 하는데

그 만큼 유럽에 미친 여파가 컸단 증거

1791년, 프랑스 혁명이 점점 진행되자

유럽의 군주들은 큰 위기를 감지하는데

이 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2세가 있었다

 

참고로 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서로 남매지간

루이 16세와 그의 가족들은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얻기 위해

몰래 파리를 탈출

도망을 하려고 하지만

실패하여 붙잡히고 만다

(바렌 사건)

1791년 8월 27일

루이 16세가 다시 감금되자

레오폴트 2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폴란드 문제로 만난 회담에서

프랑스에 대한 압박을 가하니

이것이 바로 필니츠 선언이다

 

참고로 내용은

루이 16세에게 위협을 가할경우 너넨 뒤진다!

였음

이에 지롱드파의 지도자였던

자크 피에르 브리소는 이것에 격분하여 전쟁을 요구했고

1792년 4월 20일, 제헌의회는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2, 프랑스

사실 프랑스에서도 전쟁에 대해 이견이 엇갈린다

 

온건파였던 지롱딘은 필니츠 선언에 피꺼솟하고 전쟁을 요구했고

동시에 자신들의 혁명을 다른 나라에도 수출하고픈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 같은 급진파는 전쟁에 반대했는데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말고도

프랑스 주위에는 강한 군주국들이 많았고

전쟁 준비도 제대로 안 된 마당에

코올 걸리면 이제까지 얻은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었기 때믄

군대도 완전 개판이였는데

사령관 라파예트를 비롯한 

장교의 태반이 왕당파였기에

제헌의회를 불신하고 있었고

반면에 일반 병사들은 제대로된 훈련도 안받았으며

귀족 장교들을 불신하고 있었으니

군대가 제대로 돌아갈리가...

아무튼 국민들 징병해서 모은 개병신 군대와

군주국들의 다구리 싸움이 시작되었다

 

3. 전쟁 초기

군대가 전혀 싸울 여건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로샹보 휘하의 군대는 벨기에 방면으로 진격했으나

오스트리아군에게 뒤지게 맞고 후퇴만 반복한다

 

(참고로 이 양반 아들이 아이티 혁명에서 학살만 오지게 해서

반군들의 결집 이끌어 낸 개 병신새기임)

이런 전쟁 양상에

브라운 슈바이크 공작은

왕실만 안건드리면, 파리는 안전할 것이다

...라는 협박을 다시 보낸다

(브런스윅 선언문)

하지만 이런 협박은

도리어 파리 시민들을 단결시키면서

군주제를 없애버리는 폭동으로 화답했으며

(8월 10일 사건)

파리 코 앞까지 쳐들어온

프로이센군을 쫓아냄으로서

혁명 정부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발미 전투)

이에 고무된 군중들은

아예 국왕까지 처형시켜버리는데...?

 

4. 전쟁 중기

루이 16세의 처형은

스페인, 나폴리, 포르투갈 같은 

많은 유럽 국가가 대프랑스 동맹에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프랑스는 대내외적으로 개판이였다

내부에서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반란

(방데 반란)

 

스페인과 샤르데나는 각각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영국은 본격적으로 봉쇄령을 내리기 시작한 참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의 효율적인 지휘와

동맹군은 개 삽질만 하며 후퇴했고

(플뢰뤼스 전투)

1795년 4월

 

내로라 하는 얘들 모여서

고작 한 나라 다구리 못 시키는 

이 상황을 도저히 보지 못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동맹군을 탈퇴한다

남은 것은 영국과 오스트리아

 

영국은 내부적으로 뒤집어 볼려고

왕당파와 손잡고 쿠데타를 지원하지만

나폴레옹이라는 젊은이의 힘만 키워주는 꼴을 낳는다

(방데미에르 13일 쿠데타)

 

 

5. 전쟁 말기

상황이 역전한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빈을 향한 공세를 시작했다

그 중에는 씹사키캐 나폴레옹도 껴있었으며

오스트리아를 아주 그냥 탈탈 털어먹었고

버티지 못한 오스트리아는

1797년 10월 17일

프랑스와 캄포 포르미오 조약을 체결하며

전쟁을 끝낸다

프랑스는 영국의 웨일즈에 병력을 상륙시키는 등

(피쉬가드 전투)

영국과의 전쟁도 끝내기 위해 별짓을 다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유럽에서의 전쟁은

영국과의 전쟁 중인 상태로 끝나게 되었다

 

 

6. 2차 전쟁

불과 1년만에

대프랑스 동맹이 다시 모여

프랑스와 전쟁이 벌어지는 데

이것을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라고 한다

 

원인을 설명하자면

프랑스가 이웃 곳곳에 자매 공화국을 만들면서

발생된 오스트리아와의 외교적인 충돌과

오스만과의 무력 충돌

러시아의 차르, 파벨 1세의 공화주의 혐오

그리고 평생의 적이였던 영국

 

이 4개국이 동맹을 결성한 것이였다

하지만 2차 동맹은 싱겁게 깨지는데

러시아는 스위스에서 예상치 못한 대패를 당했고

(제2차 취리히 전투)

 

동시에 영국이 자국의 선박을 수색하려고 하자

분개하며 동맹을 탈퇴한다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갔다가 고립 당한 것이였는데

 

근데 전쟁 선포하고 몇 개월 지나니까

나폴레옹 이 새끼가 탈출은 물론이고

아예 정권까지 잡았던거임

나폴레옹은 다시 이집트에 군사를 보내서

오스만을 연합에서 탈퇴시키도록 하였으며

결국 답이 없어진 오스트리아는

1801년 2월 9일

프랑스와 단독으로 강화 조약을 체결했으며

자매 공화국과 프랑스의 라인란트 지배를 인정하며

전쟁을 끝낸다

(뤼네빌 조약)

영국도 정권이 바뀌며

프랑스와 화해를 하자는 의견이 등장했고

1802년 3월 27일

아미앵 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끝낸다

이로써 유럽에는 평화가 왔나 싶었지만

 

다굴 맞고도 멀쩡한 왼쪽 퍼렁거의 등장에

각각의 군주들은 새로운 위협을 감지하고 있었다

 

 

과연 유럽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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