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독립 전쟁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오스만 치하 그리스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
오스만은 발칸 반도의 패자가 되었고
그리스 정교회인들은
2등 시민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얌전히 통치를 받았던 것은 아니고
17세기부터 디오니시오스가 이끄는 봉기를 시작으로
소규모적인 반란이 행해졌으며
모레아 전쟁 이후
베네치아가 펠레폰네소스를 점령하면서
이 곳을 기점으로 오스만에 대항할 세력을 불리기 시작했고
당시 오스만과 적대하던 러시아는 케밥의 영향력을 줄일 생각에
그리스 봉기군을 지원하기로 했다
2. 봉기 전의 상황
오스만은 당시 그리스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세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지방의 토호(?) 때문이였다
이들은 원래 비잔틴 제국이 무너진 이후
곳곳에 깽판을 치던 도적떼와 그들과 맞서던 민병대였으나
(클레프츠와 아르마톨로이)
점차 대를 거듭할 수록 각각의 지방에 힘을 내리기 시작했고
오스만도 이를 어떻게든 손보려고 했으나
완벽히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토호 말고도
부를 쌓은 몇몇이 서유럽에 건너가서
그곳의 계몽주와 낭만주의를 배우고
그리스 민족주의로 승화시키도 했으며
오스만이 러시아에게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본
그리스인들은
우리도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770년에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오를로프 봉기가 일어나지만 실패한다
본격적인 민족주의의 발흥에
그리스 청년들은 유럽 각지에 프리메이슨 마냥
독립을 위한 비밀결사를 모집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필리키 헤타리아)
유럽 전역에서는
당시의 많은 문화가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독립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많았고
(필헬레니즘)
이 시기 예술가들은 그리스에서 케밥의 추방을 염원했다
3. 봉기
1820년 4월
첫 봉기는 몰도바와 왈라키아 지역에서 일어난다
그리스 독립전쟁의 시작이였지만
2개월만에 오스만에게 탈탈 털리며 끝나버린다
왜냐? 러시아가 지원을 안해줬기 때문
민족주의로 무장한 그리스인들이
오스만에 부역한 몰도바 사람들을 마구 학살하는 바람에
러시아가 쌍욕을 퍼부으며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렇게 그리스 반란은 이대로 끝나는 듯 싶었으나
오스만이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콘스탄티노플의 정교회 대주교였던
성 그리고리오스를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이 사건은 러시아와 그리스인들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다시 오스만을 향한 봉기가 시작되는 원인이 된다
그렇게 대주교의 처형에 분개한
그리스 친구들은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지역에서 봉기하여
본격적으로 케밥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822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의 나라
그리스 제1공화국이 선포된다
하지만 이 독립 전쟁에 대해
유럽의 나라들은 별로 좋은 눈치가 아니였는데
빈 체제로 유럽의 안정을 겨우 이륙한 와중에
그리스에서 혁명이 터져버렸으니 말이다
(신성 동맹은 아예 그리스인들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4. 위기
그리스 제1공화국은 개국과 동시에 내전을 치르는데
독립군 세력이 하나가 아니였던지라
여러 무리들이 헌법 작성 과정에서 대립을 시작하면서
오스만과의 전쟁 와중에도
자기네들끼리 2년 동안, 두 번의 내전을 치른다
(그리스 내전)
그 와중에 이집트가 오스만에게
크레타, 키프로스, 시리아, 펠로폰네소스를 받는 대가로
그리스 독립 전쟁에 개입을 한다
그리스인들은 깡마른 체구인 이집트군을 비웃었으나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 때부터 활약한 병사였고
노련한 솜씨로 그리스군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그 후 1826년까지
그리스인들의 죽기 살기의 저항에
가까스로 오스만-아랍군의 진격은 멈추었지만
그리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5. 런던 조약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리스에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는다
자신 스스로 동방 정교회의 수호자라고 여기는 마당에
오스만에서 총대주교가 처형 당했으니
마땅히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유럽의 평화를 중이 여겼던
메테르니히 같은 타국의 견제에
실제로 전쟁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1825년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리스 문제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보이자
영국의 외무장관이였던 조지 캐닝은
러시아의 국력 성장과 영향력을 우려하며
프랑스까지 끌어들여 그리스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 결과
1827년 7월 16일
영국, 러시아, 프랑스는
오스만에게 그리스인을 향한 적대적인 행위를
멈출 것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런던 조약)
다만, 그리스의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술탄이 지배하는 대신에 그리스인의 자치를 달라는 것
(대충 유로파로 치면 변경국?)
하지만 오스만은 자신들의 해군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 런던 조약을 거부했다
6. 독립
전쟁은 국제전으로 커졌고
약 3개월 후
이오니아 해 부근에서
3국 연합의 해군이 오스만 해군을 작살내버린다
(나바리노 해전)
오스만 해군이 엎어지자
영프군은 잔존해있던 그리스군과 함께
그리스 본토의 오스만군을 몰아내기 시작했고
1828년에 러시아가 1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코카서스 지역으로 오스만에 쳐들어갔으며
(182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러시아군이 트레비존드까지 다다르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오스만 제국은 결국 런던 조약을 승인하면서
러시아에게 아르메니아 할양, 세르비아 자치
막대한 배상금까지 물어주는
아드리아노플 조약을 체결한다
오스만이 항복하고
자치를 얻게 된 그리스였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이대로 물러간다면
러시아가 그리스에 영향력을 뻗칠 것 같았기에
아예 독립시키기로 결정했고
러시아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반대할 명분도 없었기에 수락하고 만다
그렇게 1829년 9월 14일
그리스 독립 전쟁이 끝난다
7. 후일담
이집트는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소득이 없자
오스만에게 시리아라도 내놓으라며 전쟁을 벌였고
2년 간의 전투 끝에, 시리아를 가져온다
(제1차 이집트-오스만 전쟁)
다만 6년 뒤에 다시 뺏긴다
메테르니히가 야심차게 만든 빈 체제는
이 때부터 슬슬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평화는 유지되긴 커녕
8년 동안의 전쟁이 펼쳐졌으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기 위한
영,프,러 동맹도 자신들끼리 견제를 시작했으니...
참고로 그리스 제1공화국이 만들어 진 것처럼
독립 전쟁은 자유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전쟁의 성공으로
유럽 내에서는 자유주의를 멈출 수 없을 것 같았고
옆 동네 폴란드에서도 이 사건에 자극을 받고는
독립을 위한 봉기를 벌인다
(그러나 실패한다)
그리스는 원래 공화국으로 시작했지만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압력에 의해서
왕국이 되어버렸는데
첫 국왕은 바이에른에서 모셔온 오토 왕자였고
1843년 9월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절대 군주제를 유지한다
(헌법이랑 의회도 없었다고 함)
여기는 왕국이랑 왕이 생겨났는데
저기 서부에서는 왕이 쫓겨놨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