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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개성공단 2022. 2. 10. 12:30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0. 프롤로그

오늘 다뤄볼 나라는 일본

 

전국시대가 끝난 이후

17세기 부터 도쿠가와 막부가 수립되어

상징적으로만 존재했던 천황과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쇼군

 

즉, 일본은 정부가 두 개나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이 막부의 통치에 반발의 기세를 보이며

새로운 정치 형태의 등장이 떠오르고 있었으니

초기 일본의 통치자였으나

어느샌가부터 허수아비로 남아있던

일본의 군주, 천황

그 천황을 대신하여

국가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하던

막부의 지도자, 쇼군

 

 

과연 이 둘의 미래는?

 

 

 

1. 개항

일본은 오랜 세월 동안

쇄국정책을 일관하면서

네덜란드와 소규모의 교류만 해왔으나

 

 

1853년

확장 정책을 펼치던 미국의 페리제독이

무력시위를 하며 개항을 요구한

흑선내항, 쿠로후네 사건이 일어난다

미국의 개항 요구

갑론을박을 펼치던 막부였으나

결국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고는

불평등조약을 맺으며 개항을 하게 된다

(일미수호통상조약)

일본의 개항은 재앙을 들여왔는데

국제적인 금과 은의 환율은 1대15였지만

일본에서는 1대5로 적용하고 있던 탓에

외국인들은 계속 일본의 금을 사들였고

 

그 결과, 일본의 금이 계속 해외로 유출되며

일본엔 극심한 인플레이션 현상이 벌어진다

일본 내에서 반서구화에 대한 열망은 높아져 갔고

 

거기에 더해 서구화에 대한 일을 처리해 오던

중신 이이 나오스케가 고메이 덴노의 허락도 안받고

5개국과 개항을 하는 안세이 조약을 체결해버린다

 

이에 반발한 무사들이

이이 나오스케를 거리에서 대놓고 살해하는

정치적인 사건도 끊이지 않았으며

평화롭던 막부는 이렇게 수렁 속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사쿠라다 문 밖의 변)

 

 

2. 존황양이

존황양이(尊皇攘夷)

 

말 그대로 황제를 드높이고

서양 오랑캐들을 몰아내자는 뜻이다

일본의 121대 천황이였던

고메이 덴노는 오랜시간 입다물고 가만히 있던

그 동안의 전통을 깨면서 국가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일수호조약이 체결될 때에도

극명하게 반대의 뜻을 표했으나

막부는 걍 무시하고 미국과 조약을 체결했고

이 때를 기점으로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전부터

막부와 오랑캐에 대한 반발은 심해져 있었고

고메이 덴노는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고는

 

1863년 3월 11일

'오랑캐 추방 명령'을 내린다

 

막부는 이딴걸 시행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일본 전국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외국인 암살로

나마무기 사건이 있다

 

명령 시행 전인

1862년 9월 14일에 일어났고

 

사쓰마 번의 번주 

시마즈 히사미츠가 이끌던 행렬 앞에

찰스 로버트 리처드슨이 나타났고

그가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무례한 이유로

많은 사무라이들이 살해해버린 사건이였다

사쓰마 번은 영국에 배상금과 사과를 거부했고

결국 영국이 가고시마에 포격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영국-사쓰마 전쟁)

 

사쓰마는 빠르게 꼬리를 내리고 

사과와 배상금을 지불했지만

이 사건은 서양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느낀

사쓰마 번이 양이는 버리는 계기가 된다

 

 

 

3. 정치 위기

전국시대 당시

조슈 모리 가문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의 편을 들고

도쿠가와와 맞선 전력 때문에

영지가 크게 줄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한다

 

그 이후로 조슈 번은 반도쿠가와를 외치며

매년 도쿠가와 막부를 전복할 생각을 꾸민다

(물론 번번이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조슈번은 천황의 존황양이를 받아들여

미,영,프,네덜란드와 전쟁도 벌일 정도였고

(시모노세키 전쟁)

천황이 '오랑캐 추방 명령'을 내리자

이를 충실하게 막부에 따를 것을 요구하자

 

막부는 전혀 명령에 따를 생각이 없었기에

오히려 조슈 번에 위협을 느끼고는

사쓰마 번의 호위를 등에 업고

조슈 번의 사람들을 죄다 공직에서 추방시킨다

(분큐의 정변)

당연히 조슈는 이런 행태에 분개하면서

막부를 향한 반란을 기도했으나 실패한다

(금문의 변)

막부는 반란을 일으킨 조슈를 없애고자

15만명의 병력으로 조슈 정벌에 나섰으나

 

조슈도 사쓰마처럼 서양의 강대한 힘을 느끼고

양이는 버리고 존황에만 집중한지 오래였으며

그 결과 조슈군은 현대화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막부군은 패배했고

이것은 막부의 위신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4. 무너지는 막부

조슈 정벌이 일어지던 와중에

 

사쓰마와 조슈는 분큐의 정변으로 인해

서로 악연으로 관계되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부에 대항하고자 하는 입장은 동일했기에

 

사카모토 료마의 주선 하에

군사적인 동맹을 맺는다

(삿초 동맹)

그리고 1867년

고메이 덴노가 오랜 지병으로 사망하고

뒤를 이어 메이지 덴노가 등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해진

두 번의 동맹은 무력을 써서라도 막부를 타도하고자 했고

 

이미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막부는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적당한 타협안을 갈구하며

 

1867년 10월 14일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국가의 모든 통치권을 메이지 덴노에게 반납한다

(대정봉환)

 

이렇게 무력 충돌은 피한듯 했으나

오랫동안 막부가 해오던 공무를 

갑자기 조정이 맡기는 쉬운 일이 아니였고

막부 세력은 그대로 하던 일을 이어받으며 권력을 유지한다

 

사실 막부도 바보 등신이 아닌지라

이런 점을 알고 역이용하며 대정봉환을 추진했던 것이였다

막부 토벌파의 명분도 끊어내면서 말이다

당연히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챈

신정부 세력인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은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영지와 권력들을 내려놓기를 요구했고

요시노부는 이를 거부하고

사쓰마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충돌시킴으로써

결국 무력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보신전쟁)

 

 

5. 일본 제국의 등장

수적으로 큰 열세를 가지고 있던

신정부군이였으나 외국에서 들여온 무기로 훈련된

병사들은 막부군에 큰 피해를 입히며 승리했고

 

보신전쟁은 불과 1년만에 막부의 패배로 끝난다

여기서 막부의 잔존 세력은

훗카이도로 가서 에조 공화국을 만들었으나

신정부군의 진압 아래 6개월 만에 단명한다

보신전쟁에서 승리한 신 정부군은

그 후 여러 개혁을 통과해나가면서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고

비유럽 지역에서 최초의 현대적인 개혁으로 평가받는다

짧지만 처참한 내전을 겨우 끝낸 일본

 

서양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개선하고

주위의 아시아 국가는 물론 타 국가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현대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동쪽에서는 새롭게 현대화해가는 국가와 달리

서쪽의 같은 아시아 국가는 환자 수준으로 변화해가고 있는데...

이번에도 쿨타임을 주지 않는 불곰의 공격을 잘 막아낼 수 있을까?

 

 

2번째 짤의 스크린샷은

호이4의 엔드 오브 뉴 비기닝이라는 모드입니당

프로이센으로 독일 제국 수립하는데

대략 사흘 걸리니 하지마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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