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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의 난

개성공단 2021. 11. 17. 20:47

1. 혼란의 청나라

청나라 외세와의 패배로 인한 불평등 조약

경제, 기근, 자연 재해 등

불안한 사건들만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아편은 점점 더 유입되어

중국인들의 생활은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었고

중앙 정부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고

부패에 찌들었으며

 

세금을 버티지 못한

농민들과 탈영병들이 곳곳에서

도적떼가 되어버렸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예수의 동생이라는 작자가 등장했으니....

 

2. 예수의 동생

예수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작자는

홍수전이라는 한족이였다

 

원래는 평범하게 시험 준비나 하는 취준생이였으나

삼수 끝에 신경쇠약으로 쓰러지게 되는데

그는 천국을 방문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야훼를 만나고

중국의 모든 우상숭배를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다...라고 주장했다

 

(본인에 의하면 공자는 백성을 우롱한 죄로 벌 받는 중)

나중에 성경 좀 읽어보고

자신의 아버지가 야훼, 형이 예수라는 것을 깨달은 홍수천은

지방을 떠돌면서 유교와 불교의 서적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1850년

홍수전은 수 만명의 지지자들을 모았고

종교결사 배상제회를 결성한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받는다... 라는

사상으로 농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3. 봉기

1851년 1월

 

청 정부도 이 이상한 단체에 대해 경계를 품기 시작했고

무력으로 자신들을 해산시키려는 것을 안

홍수전은 먼저 선빵을 치기로 결심

사람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며 봉기를 일으켰다

(금전봉기)

반란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홍수전은 1851년 1월 11일 태평천국을 건국했고

자신을 천왕이라고 선언했다

초기엔 태평군이 우세를 점하는 데

 

적군의 요새 아래로

땅굴을 파고 밑으로 쳐들어가는 전략을 택해

수비군을 우왕좌왕 시킬 수 있었다

참고로 똑같이 반 만주 성향을 가지고 있던

삼합회하고도 협력하기도 했다

 

 

1853년 3월

난징을 함락시킨 태평군은 병신짓을 저지르는데

군을 두 개로 쪼개고 북쪽과 서쪽으로 보내버린 것이였다!

(한 군데만 보내도 모자랄 판에)

 
 

4. 태평(平)천국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 탓에

농민 같은 하층민들이 많이 몰려들었고

남녀간에도 평등은 적용됬기에 때문에 여군도 있었다

 

중공에서는 이 나라를 원시 공산주의 국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나중의 공산주의도 엇나갔듯이

 

홍수전은 천왕으로 즉위하자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후궁을 수십명 넘게 두었고

 

윗사람들의 부정부패는 당연했으며

평등 뭐 그 딴거는 아랫사람 한정이였다

여기까지만이였어도 모를까

 

창립 멤버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노리고

전쟁 와중에도 지들끼리 이단이라고 주장하며

희대의 내분을 시작해버리고...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1인자인 홍수전은 사치스러운 생활에서 즐기며

행정과 정치 면에서 손 뗀지 오래였고

바른 말 하는 새끼 있으면 몰래 암살해버리는 짓만 한다

 

5. 멸망

서양 세력은 지도자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니

약간의 관심을 걸어보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냥 사이비 종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고

얘네들이 이긴다고 해도, 자신들이 중국과 체결할 조약

그대로 이어나갈 의지를 보이지 않아보였다

(제2차 아편전쟁 끝난 이후)

그래서 서양 세력은 청나라를 지원하기로 했고

미국 출신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가 자금 지원을 받아

중국인들을 서양식으로 교육한 상승군을 조직한다

 

이 친구들은 이후 반란 진압에서 요긴하게 써먹는다

청나라는 중극범, 이홍장 등의 지휘 아래

이미 안에서부터 무너지던 반란군들을 진압하기 시작했고

후난 지역에서 군대를 새로 모집하는데 이것이 상군이다

 

상군은 전쟁이 끝나고 해산되었지만

한족이 청나라의 영향력을 접수하는 계기가 되었고

 

상군의 특징인 중앙집권적인 지휘권

후일 있을 지방 군벌 시대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864년 6월 난징은 청군의 포위에 맞서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냈지만

 

배고픔을 못 이긴 홍수전이 풀 뜯어먹다가 식중독으로 사망하자

 

구심점을 잃어버린 반란군은

1864년 8월, 성이 함락되며 최종적으로 패배했다

 

 

6. 전쟁이 남긴 것

사망자 수는 약 2천만~7천만으로 집계되었다

 

다만 대부분은 역병이나 기근으로 인한 것이였다

이 반란은 경제적인 문제와 함께

민족주의 면도 깔려 있었는데

 

만주족을 내쫓아버리고, 다시 한족을 부활시키자는 것이였다

(그 예로 태평군은 가는 곳마다 만주족을 학살했다)

(위 사진은 홍수전이 기획한 궁전)

 

우상숭배를 금지하다보니

유교, 불교, 기타 민속 신앙 관련된 것들을

문화대혁명, 탈레반 저리가라 할 정도로 모두 부섰고

 

오직 기독교(Ver.태평)만을 숭배할 것을 강요당했다

 

웃긴 것은 모세의 십계명에서 '간음'을 '음란 행위'로 번역하는 바람에

태평 치하에서 신혼 부부가 서로 눈도 못 마주쳤다고 한다

태평천국의 난은 총력전의 성격도 띠고 있었는데

양측 모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것을 끌어다썼고

 

이는 청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급격한 쇠퇴만 불러왔을 뿐이였다

또한 이 전쟁의 결과로

팔기군은 전혀 쓸모가 없는 병신 군대로 판별났고

지방의 평범한 사람들을 징병시키기 시작했으며

앞서 말한대로, 후일 지방 군벌 시대의 발판이 되버린다

 

 

그리고 이 반란 와중에

중국에서는 또 하나의 전쟁이 일어났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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