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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무역 적자 1557년 포르투갈이 마카오에서 무역을 시작한 이유 많은 유럽 나라들이 중국과 접촉을 시작했고 아시아 국가들의 조공 무역과 다르게 광동(광저우)에서의 제한적인 무역을 행했다 (광동 체제) 중국은 유럽 제품의 수요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유럽은 비단, 도자기, 차 등 중국 제품의 많은 수요를 가졌고 그 결과 대량의 은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등 유럽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맞이한다 18세기 후반 영국은 이런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청나라로 수출하는 방식을 택했고 아편의 강한 중독성에 수요가 급증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이익을 보기 시작했고 중국에선 아편에 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2. 아편 19세기 ..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그레이트 게임 영국은 19세기 초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세우면서 통치를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많은 수익을 거두면서 영국이 우려한 것은 바로 러시아의 남진이였다 1801년 실제로 나폴레옹이 러시아의 파벨 1세와 인도 합동 침공을 구상 했을 정도로 러시아의 남진은 어느 정도 가능한 상정이였다 (다만 파벨 1세가 암살당하면서 이 시도는 좌절됨) 영국 입장으로서는 언젠가 오스만, 발칸, 중앙아시아를 러시아가 먹을 것 같았고 그 다음은 인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였다 그렇게 막고자 하는 영국 확장하고자 하는 러시아 사이에 중앙아시아 및 남아시아를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러시아를 막을 완충국으로 아프가니스탄 토후국이 눈에 들어..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왕실의 도주 1807년 포르투갈이 영국과의 무역을 중단하라는 나폴레옹의 요구를 거절하자 프랑스군은 포르투갈을 침공한다 포르투갈은 침공 11일만에 항복하고 왕실을 비롯한 귀족들은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도망간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때까지 브라질은 포르투갈 제국 노릇을 하였고 이 식민지는 그냥 독립을 해도 문제가 없을 수준의 국가가 되어갔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며 10여년 동안의 전쟁이 비로소 끝나자 왕실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때 브라질은 다시 식민지 지위로 돌아가는게 아닐까 하는 그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에 주앙 6세는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 왕국을 만들어주며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지위를 동등하게 만..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전쟁 그 후 약 10년 동안 유럽을 깽판으로 만들어 놓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는 나라가 좆망할 운명이였고 그 프랑스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각각의 승전국 대표들이 빈 회의를 열었지만 외교의 신 탈레랑페리고르가 나폴레옹이 강제로 참여시켰을 뿐 우리는 죄가 없어요 ...라며 신나게 이빨을 깐 덕에 프랑스는 혁명 이전의 영토와 부르봉 왕조 복원이라는 상당한 관대한 조건을 얻을 수 있었다 2. 루이 18세 루이 18세는 15세의 손자이자, 16세의 동생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 독일에서 살고 있다가 탈레랑의 주선으로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루이 17세는 어딨냐고 물을 수 있는데 루이 16세의 아들로, 루이 16세가 처형된 직후..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오스만 치하 그리스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 오스만은 발칸 반도의 패자가 되었고 그리스 정교회인들은 2등 시민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얌전히 통치를 받았던 것은 아니고 17세기부터 디오니시오스가 이끄는 봉기를 시작으로 소규모적인 반란이 행해졌으며 모레아 전쟁 이후 베네치아가 펠레폰네소스를 점령하면서 이 곳을 기점으로 오스만에 대항할 세력을 불리기 시작했고 당시 오스만과 적대하던 러시아는 케밥의 영향력을 줄일 생각에 그리스 봉기군을 지원하기로 했다 2. 봉기 전의 상황 오스만은 당시 그리스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세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지방의 토호(?) 때문이였다 이들은 원래 비잔틴 제국이 무..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반도전쟁 1808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폴레옹 통치에 반대하는 봉기가 시작되며 이른바 반도전쟁이 시작된다 당시 스페인의 공식적인 정부는 프랑스에게 바로 도게자를 해버리고 나폴레옹의 형, 요제프 보나파르트를 앉힌 후였고 통치자가 병신같거나 국민들에게 해악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 될 경우 스스로 들고 일어날 수 있다는 프란시스코 수아레스의 철학을 반영하여 무능한 정부를 대신에 스페인 각 지방마다 군벌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남미에 위치한 식민지에도 세워졌고 이 군벌들은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며 프랑스에 대항하는 연합을 구성했다 (카디즈 코르테스) 그런데 이들 스스로 자치를 진행하다보니 허수아비가 된 개막장 스페인에 충성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연방당의 몰락 1812년 미영전쟁이 벌어지고 영국군에 의해 워싱턴이 불타는 일이 생기자 이제까지 전쟁에 반대하고 있던 연방당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연방당은 수도가 함락되는 큰 일이 발생한 만큼 드디어 자신들의 말이 맞았다고 여겼고 코네티컷에서 회의를 열며 (하트퍼드 회의) 이제까지의 정치적 불만을 품었던 내용을 의회에 전달하는데 (전쟁에서 개발렸으니 민주-공화당은 이제 끝났고 남은 건 자신들의 우세임을 생각한 연방당이였다) 요구 사항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국가 승인, 무역 제재, 선전 포고를 위새헌 의회의 2/3이 찬성해야 한다 2. 3/5 타협안 철폐 3. 대통령 연임 금지 4. 역대 대통령은 전임자와 다른 주 출신이어야 할 것..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프레스 갱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자국을 방어할 수단인 해군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선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선원의 급여와 생활상은 너무나도 가혹했기에 좀 처럼 모여드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자원해서 입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필요로 하는 입력은 아직도 부족한 수준이였고 본격적으로 징집 연령 제한을 높이기 시작하더니 노숙자, 경범죄자, 시 의원(...)부터 일반인을 술을 먹여 잠재우고는 강제로 바다에 내보내는 방법까지 동원되었다 (웰치스 괴담?) 이런 납치를 프레스 갱이라고 불렸으며 트라팔가 해전 당시 12만의 선원 중에 절반이 이런 식으로 징병당한 사람들이였다 당연히 탈영병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옆 나라인 ..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산업혁명 산업혁명 말 그대로 산업 분야가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한 것을 말한다 이 전례없는 변화에 유럽은 중국과 인도, 중동의 경제력을 압도하기 시작하는데 (대분기) 중국과 인도 같은 곳에선 왜 이 같은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는가...는 아직도 많은 의견이 분분한데 기독교로 뭉친 유럽과 달리 많은 사상과 종교로 나뉘어진 아시아라 그렇다고 하고 중국 특유의 고립주의에 높은 세금, 분열된 정치 때문이라고도 한다 산업 혁명은 유럽의 생활 수준 건강, 수명 등에 급격한 변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특히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주된 이유로는 영국이 가지고 있던 식민지라고 보고 있다 식민지의 많은 천연자원과 생산한 공산품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1. 프리뷰 이번 편은 나폴레옹 전쟁의 에필로그 같은거라고 보면 된다 이제는 거의 뇌절급이지만 다시 한번 있었던 일을 뒤돌아보자 프랑스에선 갑자기 반란이 터지더니 (바스티유 습격 사건) 찰스 1세 이후로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국왕 처형이 재현되었고 (프랑스 혁명, 로베스피에르) 이 미친놈들 막으려고 유럽의 군주들이 죄다 달려들었건만 (프랑스 혁명 전쟁) 더 미친놈을 탄생시키는 역풍을 불려왔고 (통령정부, 나폴레옹) 그 결과 약 10여년 동안 유럽이 난장판이 되는 결과가 벌어졌다 (대프랑스 동맹 전쟁)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군주들은 개판 상태의 유럽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2. 신성 동맹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이전에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는 1814년에 쇼몽조약을 체결하여 프랑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