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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회의

개성공단 2021. 8. 26. 11:35

1. 프리뷰

이번 편은

나폴레옹 전쟁의 에필로그 같은거라고 보면 된다

이제는 거의 뇌절급이지만

다시 한번 있었던 일을 뒤돌아보자

 

프랑스에선 갑자기 반란이 터지더니

(바스티유 습격 사건)

찰스 1세 이후로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국왕 처형이 재현되었고

(프랑스 혁명, 로베스피에르)

이 미친놈들 막으려고

유럽의 군주들이 죄다 달려들었건만

(프랑스 혁명 전쟁)

더 미친놈을 탄생시키는 역풍을 불려왔고

(통령정부, 나폴레옹)

그 결과

약 10여년 동안 유럽이 난장판이 되는 결과가 벌어졌다

(대프랑스 동맹 전쟁)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군주들은 개판 상태의 유럽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2. 신성 동맹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이전에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는

1814년에 쇼몽조약을 체결하여

프랑스에 대항하는 신성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

1814년 5월 30일

동맹국은 망명해 있던 루이 18세를 대신해서 온

외무장관 탈레랑과 협상을 진행하는 데

(1814년 파리 조약)

 

내용은 프랑스의 국경을 1792년으로 원상복귀하라는 것

 

사실 동맹국은 프랑스에 그리 가혹한 조건을 내밀 생각은 없었다

왜냐면 자신들이 원한대로 군주제가 복원되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섬을 탈출하고

제7차 전쟁을 일으켜버린 후

 

동맹국은 프랑스에 가혹한 조건을 내밀었고

(1815년 파리 조약)

이에 프랑스는 7억 프랑의 배상금

위 사진대로 각국에게 3년 동안 영토를 점령당해야 했다

(당연히 주둔 비용도 프랑스가 지불)

 

일단 이것은 나중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아무튼 1815년

전쟁의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신성동맹의 일원인 4국과... 프랑스가 모였다

 

 

3. 탈레랑

프랑스는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자

패배한 나라였기에

4국에게 조리돌림 당할 운명이였지만

 

외무장관 탈레랑은 능숙한 말빨로 다른 대표들을 압도하는데...

동맹국 대표들 :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동맹국이 프랑스에 불리한 조건 꺼낸다 싶으면

탈레랑 : 아니 시발 이건 프랑스에게 너무 불리하잖아 이 개새끼들아

너네가 뭐가 잘났다고 맘대로 감 내놔라 배 내놔라야?

 

탈레랑은 바로 달려들어 항의하고

몇 시간 동안 각 대표들을 평가질해댔으며

동맹국 대표들 : 아 그리 화내지 말고

아직 이게 결정난게 아니라니까?

 

동맹국은 당황하며 둘러대기 일쑤였고

탈레랑 : 그럼 왜 말을 꺼내고 지랄이야 이 새끼들아

 

탈레랑은 대강 이런 화법으로 동맹국을 데꿀멍하게 만들었으며

타고난 수완으로 4국 동맹을 이간질 시키기에 바빴다

 

러시아가 좀 커져간다 싶으면, 영국에게 일러바치고

프로이센이 좀 급부상한다 싶으면, 오스트리아에게 속삭이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

프로이센이 작센을 일부분만 처먹거나

오스트리아가 샤르데나 먹는 것을 방해했고

러시아가 폴란드를 다 못 먹게 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오스트리아 견제할 생각에

독일 연방에 적극 찬동하는 입장을 보였는데

이것은 후일 있을 전쟁의 원인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4. 최종안

제일 문젯거리는 바로 폴란드 분할이였는데

 

러시아는 폴란드를 모두 삼키고

프로이센은 작센을 다 해먹고 싶었다

 

이를 견제한 오스트리아는 영국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멋대로 행동하면

바로 전쟁을 한다는

비엔나 비밀 조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쟁할 생각이 없었고

이 조약을 의도적으로 유출시켰으며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생각을 좌절시키기 위함이였다

타협 결과

러시아는 바르샤바 공국을

폴란드 입헌왕국을 독립시키며

(독립국이라고는 하는데... 동군연합의 형태를 취했고, 나중에는 아예 합병되버림)

 

프로이센은 작센의 일부분만 먹었고, 그나마도 작센 왕국으로 독립시킨다

그리고 포젠 대공국 크라쿠프 자유시가 만들어지게 된다

(말이 자유시지, 프,오,러가 공동통치하는 보호령)

신성로마제국과 라인 동맹의 해체에 이어

독일에는 독일 연방이 탄생했다

네덜란드는 영국의 것이 되었으며

오라녜나사우가 가문이 통치하게 되었다

(현재 네덜란드의 왕실)

스위스는 22개 주의 중립이 보장되었고

연방이 창설되었으며

스위스 용병이 금지되었다

오스트리아는 티롤과 잘츠부르크, 일리리아, 롬바르디아, 베네치아, 라구사를 받았지만

독일 남서부 지역과 네덜란드는 돌려받지 못했다

교황령과 나폴리, 투스카니가 복원되었고

나머지 지방은 여러개의 국가로 분할되었다

영국은 많은 보조금을 퍼부어준 대가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카리브해 식민지와

네덜란드의 것이였던 실론

그리고 케이프와 몰타, 세이셸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5. 후대의 평가

빈 회의의 평가는 둘로 엇갈리는데

 

하나는 프랑스 혁명 체제 이전으로 복귀하면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사상을 짓눌렀다는 데 있다

 

일종의 보수적 질서를 성립하려고 한건데

이는 1848년 혁명 때 터져나오게 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바로 벨 에포크 시대라고 불리는

1815~1914년간

약 100년 동안, 유럽의 전쟁을 예방했다는 것이다

이전의 역사만 돌이켜봐도

각각의 나라들이 불안정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다가

서로의 욕심이 겹쳐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에 각국의 대표들이 타협을 해가며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규칙을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빈 회의 자체가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것은 아니였고

4대 강국에 의해 좌지우지 된 면이 있기는 했으나

 

이들이 행한 조치는 지난 전쟁을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였다고 평가 된다

 

 

 

 

빈 회의는 약 100년 동안 유럽의 균형을 유지했지만

 

약 30년 후

유럽 전역에 혁명이 확산되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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