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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개성공단 2021. 8. 26. 11:33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남은 앙금

1802년 3월 27일

영국과 프랑스가 체결한

아미앵 조약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으로 인한

유럽에 평화가 찾아오는가

...는 개뿔

 

나폴레옹이 자매 공화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위스에 헬베틱 공화국을 만드는 등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즉, 서유럽으로 세력을 넓혀나가자

 

영국은 이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항의를 하지만

나폴레옹은 니들이 유럽에 상관할 게 뭐 있냐고 씹는다

 

(영국의 조지 3세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다!)

영국으로서는 프랑스가 언젠가 유럽을 통제할 것이며

자신들을 고립되게 만들 것을 우려했고

영국은 1803년 5월 18일

아미앵 조약을 파기하면서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한다

 

나폴레옹 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2. 쇼미더머니

선전포고를 했다고 하나

본토끼리 붙는 전투는 안 일어나고

영국은 예전에 소개한 아이티 같은

프랑스령 섬들을 하나하나 점령해나간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대영제국의 강한 해군 덕분이였다

 

영국은 해군으로 본토 방어만 하면서

남는 자금을 모두 전쟁 동안 동맹국에 지원할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나는 1815년까지 프랑스만을 조지기 위해

조금도 쉬지 않고 활동을 해나간다

뭣보다 전쟁은 역시 이였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2배나 인구는 적었지만

 

나중에 서술할 프랑스의 봉쇄령

세금과 밀수로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 보조금을 퍼주면서

나폴레옹을 고전케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나폴레옹도 바보는 아니여서

적어도 영국의 해군에 영향을 미칠 전략을 짜지만

1805년 9월 21일, 트라팔가 해전으로 좌절되고 만다

 

 

3. 제3차 대프랑스 동맹(1805~1806)

1804년 5월 18일

나폴레옹이 아예 프랑스의 황제에 올랐고

1805년에는 이탈리아의 국왕 자리에 오른다

 

이에 경악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웨덴

그들은 또다시 영국과 동맹을 맺는다

1805년 9월 8일

오스트리아군은 4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패기롭게 바이에른을 침공했지만

 

씹사키개 나폴레옹에게 개털리면서

절반 이상이 포로로 잡힌다

(울름 전투)

1805년 12월 2일

이번에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군의 합동공격이였으나

나폴레옹은 아무렇지도 않게 격파해버린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뭔가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한

오스트리아는 GG를 치며

프레스부르크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에서 빠진다

 

오스트리아는 이 조약으로 슈베반, 티롤, 베네타, 이스트라를 털린다

 

4. 제4차 대프랑스 동맹(1806~1807)

1806년

나폴레옹은 독일의 중소국가들을 뭉쳐서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완충지대를 목적으로

라인 동맹을 결성한다

그리고 1806년 8월 6일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신성로마제국이 나폴레옹의 압박에 의해 해체된다

오스트리아가 GG치고 몇 개월 지난 후

영국, 러시아, 작센, 스웨덴... 그리고 프로이센이 모여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는데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본래 전쟁에 그리 열정적이진 않았으나

프랑스의 팽창과 라인 동맹의 결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이센은 독일의 문제에 끼어들지 말라며

10월 1일에 프랑스에 최후통첩을 날린다

전쟁은 10월 9일

프로이센 군대가 프랑스군에 개작살나면서 시작되었다

(슐라이츠 전투)

하나된 프랑스군과 다르게

지휘계통이 각자 나뉘어져 있는

프로이센군인 패배만 거듭했고

(할레 전투)

10월 27일

전쟁 발발 겨우 18일 만에

수도 베를린까지 함락되어 버린다

11월 21일

나폴레옹은 베를린에서 대륙봉쇄령을 발표하는데

이것은 아직도 섬에서 안나오고 뻐기고 있는

영국을 향한 수출 및 수입 금지 명령이였다

 

하지만 이것은 유럽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 뿐이였고

대륙에서의 반프랑스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로이센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스웨덴도 프랑스에게 탈탈 털리면서

(프리틀란트 전투)

 

1807년 탈지트 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끝낸다

 

 

5. 제5차 대프랑스 동맹(1809)

1809년

오스트리아군은 지난 전쟁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며

프랑스를 조질 군대를 하나 둘 씩 모으기 시작한다

30만명의 대군을 확보한 오스트리아는

마침 프랑스가 이베리아 때문에 혼란한 것을 보고

영국, 샤르데나, 시칠리아와 함께 동맹을 결성하며

프랑스에 선빵을 친다

(레겐스부르크 공세)

근데 오스트리아군은 숫자만 많았지

문제점이 꽤 많았다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해서

군대의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참모본부도 야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뇌피셜로 군대를 굴리는 수준이였다

그래도 오스트리아군은 기습을 가하는 등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에

최초로 패배를 먹이기도 했으나

(아스페른-에슬링 전투)

패배를 맛본

나폴레옹이 제대로 빡돌아서

오스트리아군에게 대참패를 안겨주었고

(바그람 전투)

 

오스트리아가 휴전을 제의

나폴레옹이 이를 수락하면서

1809년 10월 14일

약 6개월 만에 전쟁이 끝난다

 

6. 러시아 원정(1812)

러시아는 대륙봉쇄령으로 피해를 보자

프랑스를 대놓고 씹으며

 영국과 무역을 재개했다

 

당연히 황제 나폴레옹의 심기를 거슬렸고

이전부터 충돌을 계속한 사이였기에

60만명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향한 원정을 시작했다

군대가 많은 것은 알겠는데

그 군대의 보급이 너무나도 문제였다

 

탄탄한 도로망과 풍부한 농업 지대로 둘러싼

서유럽과 중유럽에 비해

 

러시아의 길은 거의 진흙탕 수준으로

군대를 거의 환장하게 만들 수준이였다

 

보급은 당연히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추위도 문제였다

러시아군에겐 1812년은 비교적 온화한 겨울이였지만

 

프랑스군은 이번 원정에서

여름옷 입고 싸우다가

저체온증으로 수 만명이 사망한다

아무튼 프랑스는 이러한 상황을 타결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만 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이 작전은 가는 곳마다 러시아군을 격파했지만

(스몰렌스크 전투)

 

프랑스군도 조금씩 피해를 입기 시작한 것이였다

결국 프랑스군은 보로디노 전투에서 한계점을 드러냈다

비록 전투는 승리했지만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에

나폴레옹은 선택을 해야했다

 

이대로 그만 철수해야하는가

아니면 모스크바를 점령해, 적의 항복을 이끌어 낼 것인가?

 

나폴레옹은 모스크바 진격을 택했다

12월,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항복 그딴거는 없었고

 

닥쳐오는 겨울, 그리고 해이해진 규율과 약탈 등으로

나폴레옹은 불과 점령 몇 주만에

모스크바를 불태우고, 철수한다

 

7. 제6차 대프랑스 동맹(1813~1814)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으로 큰 피해를 보았고

이는 구 동맹국들에게 고무감을 안겨주었으며

 

1813년, 아직도 전쟁을 지속하던 영국

스웨덴, 러시아, 포르투갈, 그리고 프로이센이 배신을 선언하며 동맹을 결성헌다

프로이센의 배신에 빡친

나폴레옹은 군대를 몰아 동맹국을 향한 승리를 얻지만

(뤼첸, 바우첸 전투)

 

자신도 막해나 손실을 입으면서

연합국에게 휴전을 요청하는데

이것은 크나 큰 패착이 되고 만다

그 강대한 프랑스가 먼저 휴전을 요청하는 것을 본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를 배신때리며

대프랑스 동맹에 합류했고

 

이것으로 프랑스군은 수적 우위를 상실한다

프랑스군이 점점 고전하는 모양세를 모이자

라인 동맹의 일원들도 프랑스를 손절치기 시작했고

 

이곳 저곳에서 몰려 들어오는 군대에

나폴레옹의 계획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라이프치히 전투)

동맹군은 프랑스에게 

프랑크푸르트 제안으로 불리는 평화 조건을 제시했는데

 

나폴레옹을 황제로 남아있게 하는 대시넹

국경을 원래대로 축소하는 것이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임을 믿으며

이 제안을 계속 뒤로 미루었고

그러나 승리는 오지 않았고

수도 파리가 함락되면서

나폴레옹은 폐위되고, 엘바 섬으로 유배당한다

 

마침내 나폴레옹의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였고

동맹국의 지도자들은 유럽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

비엔나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데...?

 

8. 제7차 대프랑스 동맹(1815)

제7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백일 천하라고도 불리는데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탈출하고

110일 만에 다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다시 돌아와 황제를 선언하고

부랴부랴 군대를 모았고

춤과 파티를 하며

탁상공론만 하고 있던 빈 회의의 당사자들은

나폴레옹을 적으로 선언하며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공격적인 전술로

유럽의 나라들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낼 궁리를 했으나

 

승리의 여신은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나폴레옹은 다시 퇴위당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간다

1803~1815년

길고 긴 나폴레옹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

이후 1914년까지

유럽은 벨 에포크라고 물리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다

 

 

물론 이 시대에는 숨겨진 이면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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