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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혁명

개성공단 2021. 8. 26. 11:30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생도맹그 

생도맹그는 현재의 아이티 지역에 있던

프랑스의 식민지

이곳에서 나오는 설탕이 세계 생산량의 4할을 차지했다

매년 평균 600척의 배가 생도맹그에 오갔으며

이 섬에서 나오는 수익은 영국의 13개 식민지와 맞먹었고

1789년 당시 프랑스의 인구 3할이 이 식민지에 의존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 수익이 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아프리카에서 직수입 해온 흑인 노예 덕분이였고

약 40만명의 노예를 개 같은 환경에서 개 같이 부린덕에

설탕을 마구잡이로 뽑아낼 수 있었다

루이 14세는 포고령으로 노예의 처벌 상한을 정했으나

설탕에 눈이 먼 농장주들에겐 그런거 없었고

온갖 형벌로 설탕을 뽑게 하니

백인과 흑인 노예들과의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2. 프랑스 혁명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며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발표되었고

모든 사람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받는다는 내용이였다

 

다만 프랑스 내에서도 논란이 되었던게

이것이 여성과 노예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인지 모호했던 것

아무튼 인간의 권리 선언이고 뭐고

생도맹그의 농장주들은 알 바 아니였고

 

혁명 정부가 자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백인들과 왕당파는 영국과 연계해 독립할 생각을 꿈꾼다

혁명의 영향은 유색인종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제2계급이라고 불렀던 자유인 계급 중에

줄리앙 레이몬드라는 사람이 프랑스 제헌의회에 가서

유색인종들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간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백인들은 혁명 정부의 결정을 거부했고

그렇게 백인들과 유색인종들은 피할 수 없는 충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3. 혁명

1791년 8월 21일 

수 천명의 노예들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을 신호로

자신의 주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아이티 혁명의 시작이였다

9월부터는 점점 노예들이 모여들더니

약 십 만명의 사람들이 결집했고

가는 곳마다 노예들을 해방하는 동시에

농장을 부수고

여자, 어린이 가릴 것 없이 백인이라면 다 죽인다

사실 노예들은 독립을 요구하진 않았는데

 

이유는 즉슨 프랑스 국왕이 자신들을 해방시키려고 하고 있으며

그것을 망할 백인놈들이 방해했을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프랑스인으로서의 시민권이였다

1792년에는 반군이 생도맹그의 1/3을 점령하자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프랑스 혁명 정부는

유색인종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하는 동시에

6000명의 프랑스 군대를 섬에 파견했다

 

군대에는 파리 코뮌이 보낸 신임 총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신임 총독은 왕당파 농장주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졌고

어떤 일이 있든 절대로 협력하지 않았다 한다...

 

 

4. 국제전

1793년 프랑스는 대프랑스 동맹에 선전포고를 하고

 동맹에는 영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영국의 수상이던 小 월리엄 피트

아이티 혁명이 카리브해 식민지들의 연쇄반란으로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동시에 프랑스의 돈줄인 생도맹그를 점령한다면

나중에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카드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토맹그 바로 옆에 식민지를 갖고 있던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 지역)

스페인도 영국의 생각에 동의했고

 

이 두 나라는 프랑스의 왕당파에게 무기를 지원하는 동시에

1793년 9월 20일, 아이티에 상륙한다

 

그리고 점령하는 곳마다

노예제와 차별을 복구해낸다

혁명 정부의 레제 펠레시테 송토니

이러다간 생도맹그를 영국에게 뺏길 것이라고 생각하며

노예들과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1793년 8월 29일

노예제 폐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헌법에 넣는다

 

(근데 저번글을 읽어봤으면 알겠지만

1793년은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은 완전해지지 않았다는

개드립을 치며, 절대로 공포되지 않는다)

이에 많은 아이티인 노예들이 프랑스와 협력하며

영국과 스페인에 저항했고

 

특히 그 중에서 눈에 띈 것은

독학으로 배운 전술과 뛰어난 리더쉽으로

지지 세력을 확보한 투생 루베르튀르라는 자였다

1797년 7월

 

결국 영국군은 투생의 뛰어난 전술괔

카리브해의 황열병으로 인해

많은 피해만 겪으며, 철수하고 만다

 

5. 투생 루베르튀르

투생 루베르튀르, 1743년 노예로 태어났다가

1776년에 자유인이 되었고

커피 농장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많은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

아무튼 영국군도 철수하고 보니

투생이 프랑스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니까

 

웬 나폴레옹이라는 친구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프랑스의 혁명은 이미 끝나버린지 오래이고

어렵게 잡은 이 섬의 권력도 그냥 넘기기 그랬으니

 

1801년

자신 스스로 생토맹그의 종신 총독이 됬음을 선언하고

흑인만의 자치 국가가 만들어졌음을 선포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자신의 처남

샤를 르클레르를 보냈고

 

샤를은 투생이 얌전하게 항복을 한다면

흑인들의 자유를 보장해주겠다고 했다

투생은 그 말을 믿고, 얌전이 투항했지만

 

이것은 샤를의 페이크였고

투생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1803년에 프랑스의 감옥에서 사망한다

 

6. 독립 전쟁

나폴레옹은 생토맹그를 점령하자

이곳에 노예제를 다시 복구시키려고 했고

 

당연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흑인들은 곳곳에서 봉기했으며

그 때마다 프랑스군은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유황 태워서 가스 만들고, 그걸로도 대량 학살했다고 함)

프랑스군은 점점 지쳐갔다

계속되는 황열병으로 인한 사망자

 

쫓으라는 반군은 안 쫓고

지나가는 민간인에 잔학행위만 일삼아

오히려 반군만 더 결집시키게 하는 노답사령관...

그런 상황에

1803년 11월 18일

장자크 데샬린이 이끄는 반군이

프랑스군에게 절반 이상의 피해를 입히며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였다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자

1803년 5월부터 영국은 생도맹그 주변을 봉쇄했고

프랑스군은 보급도 없는 상황에

더 이상 버티기엔 무리였다

패배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프랑스군은 1803년 11월 30일, 영국군에게 항복했고

 

1804년 1월 1일

데샬린은 공식적으로 식민지의 독립을 선포했고

원주민이였던 아라와크 족의 이름을 따

국명을 아이티로 개명했다

 

원래부터 부유한 지역이였으니

아이티의 미래는 꽃길로...?

 

 

7. 독립 이후

아이티는 자유 공화국으로 출발했으나

장자크 데샬린은 아직 아이티가 안정되지 않았다며

자신 스스로를 종신 총독으로 임명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독립 이후 

약 4개월간 

백인들을 향한 집단 학살이 벌어지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주변 국가로부터 관계가 악화된다

그리고 오랜 내전으로 인해

농업과 상업 모두 좇망한 상태였고

 

경제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폐지했지만

국민들을 거의 노예처럼 굴린다

데샬린은 프랑스군이 다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국방비를 과도하게 지출했고

이것은 경제를 악화하는데 일조했다

 

계속되는 불안정에 국가의 힘을 하나로 모은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자크 1세라고 칭하며,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공화파에 의해, 1806년 암살당한다

이후로도 아이티는

왕국과 공화국으로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거나

대통령이 임기의 절반도 못채우고 쫓겨나거나

쿠데타나 반란이 일어나거나

기타 등등

또 프랑스는 독립을 승인해줄테니

루이지애나 매입한 비용의 2배를 요구하지 않나

(1825년에 갚기 시작해서 1947년에 다 갚음)

 

배상금을 갚아야 하는 데 

돈이 없으니까

이름만 노예제가 아닌 법을 만들어서

사실상 노예를 쳐 굴리지 않나

 

우리 시대의 평등이라 외치면서

스페인에게서 뺏어온 도미니카 지역민들 계속 굴리지 않나

(결국 독립전쟁 끝에, 1844년에 도미니카 독립)

20세기엔 미국의 통치 받다가

대충 독립하고 지진나고 폭동나고

아무튼 중남미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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