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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完)

개성공단 2021. 8. 26. 11:29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문제적 프랑스

프랑스의 국민공회

공포통치라는 이름으로 부를 만큼 잔혹했다

 

저번에 소개한 여러 법들을 통해

사법 절차를 무시했으며

매일 단두대에 끌려가는 사람이 그치지 않았다

국왕을 죽이고

프랑스에 혁명을 이룩한 영웅으로 평가받은

로베스피에르는 권력을 맛을 보고는

국민들을 위협해가며 독재자가 되어버렸고

이러한 폭정을 버티지 못한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자신이 죽인 국왕과 같은 신세를 맞는 결말을 당한다

대프랑스 동맹의 전쟁 또한 계속되고 있었다

프로이센, 스페인, 네덜란드는 전쟁에서 이탈했지만

 

영국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는 평화를 거부하고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당시 정부는 전쟁으로 인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배의 가치를 지닌다는 아시냐라고 불리는 국채를 발행했는데

 

문제는 이것을 국민들에게 강제로 구입하게 했으며

동시에 발행을 엄청나게 남발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결과를 통해

국민들은 더 비참한 생활을 맞이했다

식량 문제도 있었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당연히 식량 가격은 폭등했고

로베스피에르는 문제 해결을 한답시고

모든 식량의 가격 통제를 해버린다
(물론 어기면 단두대 익스프레스)

 

상인들은 그딴 가격에 파느니, 그냥 팔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식량이 돌고 돌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2. 총재정부

왕당파가 시도한

방데미에르 13일 쿠데타가 좌절된 후

 

신헌법에 의한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었는데

의회가 임명한 5명의 총재가 행정을 맡는 것이였고

이것이 바로 총재정부

총재정부가 가장 해결해야 하는 것은 경제였다

아까 말한 채권이 계속되는 남발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채권이 모이고 모여, 24억 프랑이나 되는 가치를 형성했다

 

총재정부는 1/3은 성직자의 재산을 강탈한 것으로 해결했고

나머지 2/3은 깔끔하게 파산 선언을 하면서

이 사태를 종식시켰다

(물론 국채 믿고 계속 사주었던 국민들은...)

다음은 식량 문제

이제까지 로비에스피에르를 비롯한 산악파는

파리만 먹여살리면 프랑스는 유지될 것이다! 

...라는 개논리로 타지방을 무시했는데

(이것땜에 지방에서 많은 소요사태가 일어남)

 

정부는 이 제도를 없애고

전국에 균등하게 식량을 분배하기로 했지만

모든 국민을 다 먹여살릴 수 없었기에

구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을 계급으로 나누는 짓거리를 저지른다

이러한 사태에 그라쿠스 바뵈프 등이 쿠데타를 기획했으나

결국 발각되어 처형됬는데

이것을 평등파의 음모 사건이라고 한다

 

이따금씩 일어나는 반란으로 여겨졌지만

후일 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

진정으로 활동적인 공산당의 첫 등장이라고 평가했다

 

3. 전쟁의 종식

대충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면

남은 것은 외부적인 문제였다

 

총재 중에

군사적인 면을 맡고 있던

라자르 카르노는 오스트리아를 향한

방면군을 3개로 나누는대

 

라인강 전선의 장 바티스트 주르당

비엔나 전선의 장 빅토르 마리 모로

그리고 이탈리아 전선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주르당과 모로는 오스트리아군에 공세를 펼쳤지만

아무런 실속없이 후퇴만 반복해버려

이렇게 프랑스는 다시 구렁텅이로 빠지는 듯 싶었지만

 

아직 프랑스에게 희망이 있었다

이탈리아로 우회하여

오스트리아로 진격하라는 임무를 받은

나폴레옹은 우선 샤르데나를 항복시키고

(몬로디 전투)

뒤이어 쫓아온

오스트리아군까지 나락으로 보내버리면서

(아르콜 전투, 리볼리 전투)

1797년 10월 17일

캄포포르미오 조약으로

오스트리아와 화평을 맺어

대륙에서의 프랑스 혁명 전쟁을 종식시킨다

 

4. 정치 위기

1797년 4월

새로운 선거에서 왕당파가 다수를 차지한다

 

왕당파는 다시 구체제의 복귀를 원했고

그 때문에 공화파가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공화파는 이것을 정부에 대한 반역으로 여기고

쿠데타를 일으켜, 왕당파 의원들을 처형하거나 추방시킨다

(프뤽티도르 18일의 쿠데타)

그리고 왕당파의 빈 자리는 자코뱅이 차지했고

피의자 법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멀린 백작이나

루이 16세의 혁명을 주도한 네프샤토 같은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다만 자코뱅이 다시 등장했다 하더라도

로베스피에르 시절의 급진적인 자코뱅은 별로 없었고

남은 총재 자리 하나는 지롱딘 계열의 장 밥티스트 트레일리가 먹는다

 

5. 외교 위기

1798년 총재정부는 프랑스의 혁명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유럽 각지에 공화국을 만들어 동맹국으로 활용한다는

아주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자매 공화국)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에 세워진 바타비아 공화국이나

이탈리아에 세워진 피에몬테 공화국 등이 있었다

영국과의 전쟁 중인 터라

그들의 봉쇄가 이어지고 있던 참에

 

나폴레옹은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식민지 건설과

영국의 수에즈 운하를 점령해, 타격을 입힌다는 이유로

이집트 원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총재정부는 식민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였고

또한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에 속했기 때문에

새로운 적을 만드는게 아닌가 염려했다

 

하지만 매우 인기 있었던 이 장군을 견제하기 위해

멀리 외국으로 보내는 겸 해서 수락하고 만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은 카이로까지 밀어버릴 정도로 승승장구 하지만

 

영국의 호레이숀 넬슨 제독과의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이집트에서 발이 묶이게 되버린다

(나일강 해전)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고립된 동시에

 

프랑스가 만든 자매 공화국에 경악한 오스트리아

혁명이 세계로 퍼지는 것을 우려하며

당시 공화주의에 극도록 적대하던 러시아의 바오로 1세를 끌어들이며

60만의 병력을 만들어 프랑스로 진군한다

(제2차 대프랑스 동맹)

 

6. 문제적 프랑스 ver.2

아까 상술한 국채를 다 없애버린 프랑스는

실제 가치를 지니는 금화와 은화만을 발행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 화폐를 발행할 자금이 부족했던 것(...)

 

이번엔 돈을 안찍어내다보니

디플레이션이 발생했고

투자와 임금이 하락하는 문제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경제 활동 감소와 실업난으로 이어졌다

1799년 또 새로운 선거가 열렸고

왕당파가 사라진 자리엔 자코뱅들이 다수 선출되었다

문제는 그들 태반이 급진적인 인사들이였던 것

 

자코뱅들은 옛날 전성기 시절을 복원하려고 시도했으며

특히 상류층과 중산층을 집중적으로 조지기 위한 법을 만들었으니

 

300프랑의 재산세를 납부하는 사람의 경우

정부에게 강제적으로 1억 프랑의 돈을 빌려주도록 했으며

왕당파나 귀족의 경우 그들의 자식이나 부모를 인질로 보내도록 했다

이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에예스

이들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고

이집트에서 탈출해

파리 시민들의 열광을 받던

나폴레옹을 꼬드겨서

총재정부를 뒤집는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총재정부는 사라졌고

5명 대신에 3명이 통치하는

통령정부가 탄생되었다

 

 

그렇게 프랑스 혁명이 끝났다

프랑스 혁명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시에예스

그리고 이제 겨우 서른살의 젊은 장군 나폴레옹

 

이 둘이 이끄는 프랑스 통령정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7. 기타

아까부터 사건 이름을 보다보면

프레리알, 테르미도르, 제르미널, 방데미에르, 브뤼메르...

 

모르는 사람은

이게 무슨 사람이나 도시 이름인지 하겠으나

이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

1793년에 프랑스 행정부가 새로 만든 달력으로

프랑스 혁명력 또는 공화력이라고 불렀다

각 달 마다, 방데미에르, 브뤼메르, 프리메르...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였고

 

태양력을 폐지하고, 10진법을 도입했는데

1주일을 10일로 만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달력을 바꿔쓰니

생활상의 불편을 초래했고

1806년에 나폴레옹 정부에 의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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