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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개성공단 2022. 2. 10. 12:33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영토 분쟁

나폴레옹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스페인의 권위는 떨어졌고

본국의 영향력이 사실상 없어진게 분명했던

남아메리카 각지에서는 독립 전쟁이 벌어졌다

막상 독립을 하고 보니까

 

각 국가간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는데

 

독립을 벌인 주동자들이 일종의 군벌 세력이였다 보니

민주주의 따위는 개나 줘버린 군부독재가 이어졌고

이로인해 정치적 다툼 및 분열은 일상이였으며

 

국가간 국경이라는 것도

지도자가 뇌내망상으로 그린 것 뿐이였기에

영토 분쟁 또한 당연지사였다

칠레와 볼리비아

안토파가스타라는 지역을 두고 분쟁을 겪고 있었는데

 

이 영토는 볼리비아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처음에는 두 나라가 이 지역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걸로 결정된다

(1866년, 칠레-볼리비아 국경 조약)

그러다가 안토파가스타에서 중요 자원인 초석이 발견되는데

(비료의 원료)

 

두 나라 위 쪽에 위치하던 

페루는 경제 상황이 많이 악화되어서

정부가 초석 생산 및 판매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 벌어진다

 

초석을 독점하여 큰 수입을 끌어오고 싶었던

페루였지만 칠레가 있기에 가격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1873년에 페루는 볼리비아에게

칠레의 팽창주의를 막자는 명분으로 동맹을 제안하고, 이루어진다

페루는 볼리비아를 끌어들인 다음

칠레에게 압박을 가했고

 

다시 조약이 수정되어

안토파가스타를 볼리비아가 먹는 대신에

25년간 칠레 기업들에게 세금을 없애주는 것으로 타협한다

(1874년, 칠레-볼리비아 국경 조약)

 

 

2. 전쟁으로

새롭게 조약이 수정되었지만

페루는 전혀 이득을 얻지 못했다

 

안토파가스타가 볼리비아 땅이 되었지만

25년간 무과세 정책 때문에

칠레 기업들을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1878년 2월

페루는 다시 볼리비아를 꼬드겼고

 

볼리비아 또한 경기 침체로 궁핍했던 상황인지라

 

각 칠레 기업들에게 10센트의 세금을 부과한다

칠레가 거칠게 항의하자

1878년 4월에 세금 부과를 취소하지만

 

페루가 자국군을 믿으라며 다시 꼬드기자

든든한 빽을 믿은 볼리비아는 1878년 8월에 세금을 다시 부과한다

 

 

그리고 칠레는 칠레대로 군함을 파견하여

안토파가스타를 점령했고, 양측간의 화약고는 터지기 직전이였다

1879년 2월

페루의 중재하에 칠레와 볼리비아간의 평화 회담이 열렸으나

 

어떠한 것 하나도 이루지 못했으며

 

볼리비아는 1879년 4월 5일에 칠레에 선전포고를 한다

(페루 또한 4월 6일에 칠레에 선전포고)

그리고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약 4만명의 칠레인들이 추방되었다

 

 

3. 전쟁

국제 언론은

페루-볼리비아 연합군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유는 단순하게 연합군은 칠레의 군대보다 두 배나 더 많았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칠레는 아르헨티나와 

파타고니아 분쟁을 겪고 있는 지라

양면전선을 겪을 우려가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칠레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자면 아니였다

 

칠레는 타 남미 국가들과 다르게

가장 안정적인 정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육해군 장교들이 외국에서 교육을 받아온 전력이 있었고

아르헨티나와의 오랜 분쟁으로 인해

실전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이 대다수 있었다

전쟁은 해전이 가장 중요했는데

 

육지는 거친 지형이 너무 많아 육전이 거의 불가능 했고

 

오로지 제해권을 확보하는 것만이

전쟁의 운명을 결정지을 요소였다

볼리비아는 해군이 없었기에

주로 페루와 칠레 해군간의 양상이였는데

 

페루 해군은 칠레보다 전함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전부 예전에 건조되어, 불황으로 인해 제대로 수리도 못하던 것이였고

 

반면에 칠레는 새롭게 장갑함을 건조 및 구매하여

페루군보다 화력과 사거리가 모두 뛰어났다

 

그 결과, 페루는 해전에서 대패한다

(앙가모스 전투)

페루는 해군을 이용해 칠레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다음 해군이 모조리 전멸당하는 바람에 보급이 끊겼고

 

남겨진 육군들도 모조리 항복한다

(타라피카 전역)

1880년 5월

 

이제는 칠레군이 북진을 하며 반격을 개시하자

 

당장 국가가 망할 위기였던

볼리비아는 페루와 군 지휘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고

 

군은 결국 분열되어 칠레군에게 각개격파 당한다

(타크나-아리카 전역)

 

여기서 볼리비아는 전쟁에서 빠진다

1880년 12월

 

페루가 항복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자

 

칠레는 아예 페루 본토를 침공하여 리마를 점령한다

(리마 전역)

수도가 무너졌어도

페루의 독재자였던 피에롤라는 게릴라를 편성하여

최후의 저항을 이어갔으며, 이는 1883년 10월까지 계속된다

(시에라 전역)

 

 

 

 

4. 결과

1883년 10월 20일

페루는 칠레와 안콘 조약을 체결하여

타크나와 아리카 지역을 할양했고

 

1929년에 타크나 지역만 돌려받는다

1884년 4월 4일

볼리비아 또한 발파라이소 조약을 체결하여

오랫동안 분쟁 지역이였던 안토파가스타를 칠레에게 할양했고

 

볼리비아는 내륙국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는다

페루는 연합에 아르헨티나까지 끌어들였는데

아르헨티나는 끝내 참여를 거부했다

 

이유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브라질의 개입을 우려했다는 평가가 있다

 

칠레는 브라질과 1881년 조약을 체결해

파타고니아 지방의 영토 주장을 포기한다

칠레는 전 세계의 초석시장을 80%나 독점하여

 

엄청난 호황을 이루는데 성공하지만

 

1914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초석을 대체하여 비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

 

칠레는 모든 산업을 초석에 올인 했던 탓에

자원의 저주를 거칠게 맛봐야 했다

이름에 관해선

 

1879년 남미의 태평양 전쟁은 'War of the Pacific'

1941년 일어난 태평양 전쟁은  'Pacific War' 이렇게 쓴다

 

동명의 전쟁과의 착각을 피하기 위해

'초석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저 멀리 극동에서는

사무라이의 몰락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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