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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역사

아프리카 쟁탈전

개성공단 2022. 2. 10. 12:35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새로운 시장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는 마지막 개척지였다

 

 

18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의 식민지는 아프리카의 겨우 10%만 있었는데

 

포르투갈이 보유한 앙골라와 모잠비크

영국이 가진 케이프 식민지, 프랑스의 알제리 등

모두 해안 근처에만 있는 영토였다

그러나 2차 산업 혁명으로

 

철도와 말라리아 치료제 등이 개발되면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곳곳으로 침투하기 시작했고

 

1차대전 발발 직전

독립을 유지한 국가는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 뿐이였다

보불전쟁, 남북전쟁이 끝나며

전후 투자 붐이 시작되고 거품이 터져 다같이 망한

 

대불황(1873~1896)으로 인해

각 국가들의 적자는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해 미쳐있었고

 

값싼 노동력, 풍부한 원자재

이 두 가지를 만족하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였다

이런 전략적인 요인 말고도

 

백인이 나머지 비백인들을 문명화해야 한다며

제국주의를 정당화 시키는 백인의 짐이란 사상이 유행했다

 

식민지화가 그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원시 민족을 자신들의 지도아래 먹여 살리겠다는  것

덤으로 기독교도 믿고...

독일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식민주의에 반대했지만

1880년대에 대중의 압력으로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비스마르크는 양면전선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충돌을 피하도록 노력했지만

 

비스마르크 사임 후

빌헬름 2세가 추진한 세계정치로 양면전선을 벌이게 된다

 

 

 

2. 벨기에 - 콩고

쟁탈전에는 감정적 호소도 동원되었다

 

중앙아프리카의 거대한 땅, 콩고 또한 경쟁이 시작됬는데

 

레오폴 2세는 이 거대한 땅을 선점하기 위해

유명한 탐험가들을 모두 초대하고

자신이 이 지역을 '인도주의적'으로 '문명화' 해주겠다며

콩고에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청했다

레오폴 2세는 미국 인사들을 만나

'노예제 및 노예무역 폐지' '우리 시대의 평등'을 들먹이며 감동시켰고

 

미국은 라이베리아와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레오폴 2세의 콩고 지배를 인정했다

 

미국의 국제적 인정에

근처에 있던 영국, 프랑스, 독일이 웅성거리자

1884년 11월

비스마르크는 베를린 회의를 열어 콩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회의 결과

 

영국은 프랑스가 안먹으면 상관없다고 하며 인정했고

프랑스는 식민지화하기엔 비용이 너무 들어서 포기했고

독일도 영프만 빠지면 상관없어서 승인했다

 

그렇게 1885년 콩고 자유국이 탄생한다

프랑스가 콩고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국가들의 개입도 컸지만

수익성 보다는 적자가 더 클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였다

 

예상대로, 레오폴 2세는

콩고 자유국을 운영하는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때마침 고무 가격도 오르고 있던 것에 편승해서

콩고 원주민들을 마구 굴리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노예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세금을 많이 내도록 했고

세금을 내지 못하면 강제 노동을 하게 했으며

노동을 거부하면 채찍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가족을 인질로 잡았으며

 

특히 할달량을 충족하지 못하면 손을 잘라야 했다

당연히 이런 실상이 비밀로 부쳐질리가 없었고

 

대표적으로 에드먼드 딘 모렐 같은 사람이 이 사실을 폭로했고

 

1908년 콩고 자유국은 벨기에에 합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레오폴 2세는 재판도 받지 않고, 1년 후 사망)

 

 

 

3. 영국 - 이집트, 남아프리카

수에즈 운하의 건설은 프랑스가 시작했다

 

영국으로서는 이 프로젝트에 반대했는데

케이프 항로를 독점하고 있기에

자신들의 상업 우위를 넘볼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건설 내내 계속 방해한다)

1869년 11월 17일 완공된 이 운하는 프랑스의 영향력 하에 있었으나

불과 2년만에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참패하면서

 

이 틈을 타, 영국이 지분을 모두 사들였고

운하는 영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오게 된다

영국은 1882년에 이집트로 쳐들어가 점령하는데

(앵글로-이집트 전쟁)

 

왜 이집트를 갑자기 점령했는지는 이유가 불분명하다

 

공식적으로는 아라비 파샤의 반란으로 인해

이집트가 무정부 상태가 되어, 수에즈 운하를 지키기 위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무정부 상태가 되지 않았고

영국의 집권 여당이였던 자유당의 인기를 얻기 위해

이집트를 무력으로 점령했다는게 크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남아프리카 지역으로

영국은 희망봉을 지나, 인도로 향하는 무역로를 통제하고자 하였고

특히 남아프리카는 금과 다이아몬드의 매장량이 풍부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는 17세기에 이주해 온

네덜란드계 보어인이 다수 있었으며

영국은 2차례의 충돌 끝에

그들을 굴복시키고, 1910년에 남아프리카 연방을 창설한다

(보어 전쟁)

 

4. 충돌

레오폴 2세의 콩고 지배를 인정한

베를린 회의에서 새로운 규칙을 정했는데

 

식민지로서의 권리를 획득하고 싶다면

그 땅을 소유하거나,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 점령을 하라는 것이였다

영국은 북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로

(종단 정책)

프랑스는 서아프리카에서 동아프리카로

(횡단 정책)

 

1898년

서로 좋은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십자가를 긋기 시작했고

두 나라의 군대는 수단의 파쇼다에서 맞딱뜨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전쟁의 공포가 커져가나 싶었지만

프랑스는 영국과 맞설 수 있는 환경이 아니였고

장기적으로 독일과 맞서기 위해서는

영국과의 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파쇼다에서 철수한다

(파쇼다 사건)

1905년에는 빌헬름 2세

이미 프랑스가 손을 뻗고 있던 

모로코의 주권을 지지한다며, 도발적인 행위를 저지른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간 회의가 개최되었고

오헝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프랑스를 지지하면서

독일은 할 수 없이 순순히 물러선다

(제1차 모로코 위기)

 

하지만 이 일은 1차 대전으로 이어지는

협상국과 동맹국간 분쟁의 발단이 되었다

1911년에는 모로코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독일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군함을 보냈지만

사실 이건 프랑스에 대한 무력 시위였다

 

독일은 1차 모로코 위기와 똑같이 전쟁을 벌일거라며 허세를 부렸고

프랑스와 영국은 이에 낚였으며

프랑스가 모로코를 지배하는 대신에

독일에 카메룬과 적도 기니를 양도하는 것으로 끝낸다

(제2차 모로코 위기, 아가디르 위기)

 

 

뒤늦게 독일이 허세를 부린 것을 알아챈

프랑스는 이젠 독일이 또 뭔가 부당하게 대응을 하면

이번에는 자신도 강압적으로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번외로 이탈리아는 소말릴란드와 에리트리아를 먹고

 

1895년에 에티오피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지만

삼국동맹에 속해 있던 이탈리아를 견제하고자

프-러 동맹은 에티오피아에 무기를 지원해주었고

 

이탈리아는 열강으로서 아프리카 국가와 전쟁을 벌여

패배한 최초의 사례를 남긴다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5. 식민지

초기 제국주의는 탐험가와 모험적인 상인만의 행위였고

열강들은 비용이 얼마나 들지 모르는 모험에 도박을 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대불황으로 인한 사회적 긴장으로 인해

각 정부들은 징고이즘이라 부르는

극단주의적인 외교정책을 쓰며

아프리카 곳곳을 무력으로 털기 시작했다

식민화의 성공은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심리에 영향을 끼쳤고

흑인들을 가둬놓고 전시하는 인간 동물원도 등장했고

 

우리 우월한 백인들이 이 열등한 비백인들을 개량시켜야 한다!

...라는 우생학도 등장했다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면... 아마 노예제 폐지가 있겠지만

 

노예제는 다른 형태인 임금 제도로 바뀌었고

 

저임금, 고세금, 강도 높은 노동과 탄압 정책을 펼쳐

이전의 노예 제도와 다를 바 없이 흑인들을 굴려먹는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많은 문제는

과연 누가 발단이 된 건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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