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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스페인 전쟁

개성공단 2022. 2. 10. 12:39

※ 대충 생략해서 썻기에

약간의 누락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 쿠바

19세기 초

많은 스페인 식민지들이 독립해나갔고

스페인은 나폴레옹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포기하는 상황이였으나

오직 많은 부를 안겨주는 쿠바만은 포기하지 못했다

 

쿠바는 다른 국가들이 외국 영토를 식민지라 보는 견해와 다르게

자신들의 문명과 기독교를 오랜 시간 동안 전파한 끝에

탄생시킨 스페인 제국의 지방, 즉 영토라고 보았기 때문이였다

1823년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는 먼로 독트린을 발표 했는데

이것은 미합중국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민지를 탈환하거나 확장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시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을 의미했다

1890년대

쿠바의 설탕은 죄다 미국에 팔리고 있었고

남쪽에 위치한 파나마에는 프랑스에 의해 운하가 건설되고 있었다

 

 

쿠바는 어느새 미국으로서 경제적 및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가 되고 있던 것이다

쿠바는 다른 식민지들의 독립과 미국의 혁명을 지켜보면서

1868년에 스페인 정부와 독립을 위해 맞섰으나 패했고

(10년 전쟁)

 

2차적으로 1879년부터 1년간 다시 싸웠으나 패한 전력이 있었다

(작은 전쟁)

 

그리고 3차로, 미국계의 지원을 얻은 독립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쿠바 독립 전쟁)

스페인은 또 다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약 10만명의 병력을 쿠바로 보냈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반란군의 전술에 당해내기엔 힘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섬의 질병에 의해 약 5만명이 사망한다

(사실 이 시대의 전쟁은 공격 보다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다수였음)

 

 

2. 미국

미국이 쿠바를 합병하려는 시도는

이미 1854년에 있었는데

 

북위 36도 30분 이남에만 노예주를 설치할 수 있다는 제약에

남부의 노예주의자들은 아예 쿠바를 합병한 다음

그곳에 노예주를 새롭게 설치하려고 했었다

 

비록 북부의 반대로 실패했지만

스페인에게 구매를 제안하다가, 구매를 거부하면 쳐들어간다는 구상이 있었고

이것이 전세계에 공개되는 바람에, 욕이란 욕은 엄청나게 먹는다

(오스텐드 성명)

아무튼 이번 독립 전쟁의 여파로

쿠바와의 무역에 큰 수익을 얻고 있던 해운 회사들과

설탕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미국인들은 '압제자 스페인'에게 고통받는 쿠바에 '자유'를 줘야 한다며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외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는 군사적인 개입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스페인에게 반군과 협상을 하여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허용하는 평화적인 접근 방식을 시도했지만

 

스페인은 협상이 곧 쿠바의 독립으로 이어지며

미국이 쿠바를 꿀꺽할 것이라는 생각에 협상은 결렬되버리고 만다

협상이 결렬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하바나에서는 시민들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1898년 2월 15일

미국은 쿠바 내의 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함 메인을 보냈는데, 이게 폭발하더니 침몰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메인 호 폭발 사건)

메인 호가 폭발한 원인은 현재에도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언론들은 스페인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기사를 남발하기 시작했고

대중들은 정부에 스페인과의 전쟁을 원하는 여론이 다수였다

 

매킨리는 더 이상 전쟁을 반대하고 있을 수 없었고

결국 의회에 요청, 미군을 쿠바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번외로 미국-스페인 전쟁은 황색 언론의 시작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황색 언론 - 쓰레기 언론)

 

 

위 그림의 두 명은 조지프 퓰리처 랜돌프 허스트

이 둘은 선정성, 잔혹성, 과장된 통계 등으로 미국의 언론을 좌지우지 했다

(그리고 둘이 라이벌이였음)

 

 

3. 전쟁

1898년 4월 21일

미국은 스페인에게 쿠바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최후 통첩을 보냈고

곧바로 쿠바 주위를 선박들로 봉쇄하기 시작하자

스페인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날렸다

이미 쿠바 혁명군도 이겨내지 못하고 있던

스페인군은 미군이 관타나모 만에 상륙을 시작하자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부리나케 도망가야 했고

(관타나모 만 전투)

단 한 번의 해전으로 해군이 전멸하는 등의 수모도 겪는다

(산티아고 데 쿠바 해전)

 

여기서 미군은 2명의 사상자가 나온데 비해

스페인군은 무려 494명의 사상자와 1889명의 포로가 나온다

계속된 패배와 사실상 포위된 스페인군은

산후안 고지에서 최후의 저항을 이어나갔으나

압도적인 화력과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산후안 고지 전투)

쿠바가 무너지고 얼마 안가서 푸에르토리코까지 함락되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스페인은 1898년 8월 13일에 항복

 

파리 조약을 체결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미국에 넘기고

쿠바에 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면서 전쟁을 끝낸다

 

 

 

 

4. 필리핀

미국은 하와이를 병합한 이후

서쪽으로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는데

그 중 조우한 것이 바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였다

근데 필리핀은 미서전쟁 이전부터 독립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필리핀 혁명)

 

스페인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자

필리핀 독립군은 미군과 연계하여 스페인군과 맞선다

(마닐라 전투)

 

다만, 미군은 필리핀군이 마닐라에 같이 입성하는 것을 거부하는 등 소란을 일으켰고

나중에 항복한 스페인은 미군에 빅엿을 먹이기 위해

몇몇 군사적 요충지를 미국이 아니라 필리핀에게 그대로 넘겨버린다

분명 스페인에서 독립했다고 믿는 필리핀

 

그리고 그 필리핀을 스페인에게서 넘겨받은 미국

 

이 두 나라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이 갈등은 후에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필리핀 전쟁)

 

 

 

 

5. 전후

이 전쟁은 고립을 유지하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뛰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미국은 전 세계의 다양한 분쟁에 개입하면서

많은 조약과 협정을 체결했고

 

나중에 대공황이 올 때까지, 경제 및 인구 성장, 그리고 기술 발전 등에서

엄청나고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스페인은 이미 나폴레옹 전쟁 부터 쇠퇴하고 있었고

필리핀의 상실로 다른 태평양의 섬들은 독일에 내줘야 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는 보탬이 되었는데

쿠바에 머물러 있던 많은 자본이 스페인으로 복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자본은 스페인의 현대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치적 타격은 극복하지 못했고

지식인들은 스페인의 왕정을 지속시켜야 하는 의문에 휩싸인다

 

쿠바는 잠시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1902년에 독립하지만, 부패와 부정 선거로 인해

온갖 무장 단체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기 때문에

 

미국이 다시 점령을 하더니

이후로는 미국의 따까리 역할을 하며 

민주 정부가 이루어지든 군사 독재가 이루어지든

미국인의 배를 채워주는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혁명

이미지 순서 OFF

필리핀은 제1공화국을 세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압제자' 미군과 맞섰으나, 4년만에 결국 패했고

1946년 독립할 때까지, 미국의 해외 영토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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